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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두려웠지만 당당하게’ 천재교과서 직원들이 노조 만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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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재교과서지부 작성일 25-05-23 01:26 조회 4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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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성연 전국언론노동조합 천재교과서지부장
갑작스러운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240여 명 퇴사, 직무전환·강제발령 조치도
“사회 초년생·계약직들이 다수, 모든 수단 동원해 가장 약한 사람부터 쫓아내”
사내 첫 노조 설립…“내 노동환경에 관심 갖고 의문 제기하자고 말하고 싶어”


교과서 시장 점유율 1위인 천재교과서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자행됐다. 직원 1400여 명이 근무했던 천재교과서에서 한 달간 200여 명이 구조조정돼 현재는 약 1200명까지 줄었다. 짐을 싸 회사를 떠나는 동료가 매일 눈에 보이고 회사가 직원들을 ‘치워버리는’듯한 상황에, 한 번도 노동조합이 생긴 적 없었던 천재교과서에 노조가 생겼다. 천재교과서 노조는 지난달 22일 설립 총회를 열고 같은 달 24일 전국언론노동조합 승인을 받아 공식 출범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6일 박성연 전국언론노조 천재교과서지부장을 서울 영등포구 신도림 인근에서 만났다. 권고사직을 거부하자 타 부서로 강제발령 받은 그는 회사를 떠나야 했던 동료들 얘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두려움도 있었으나 이젠 당당히 노조 조끼를 입고 다닌다는 박 지부장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했다.

-올해 3월부터 이뤄진 대규모 구조조정에 맞서 노조를 설립했다. 구조조정 상황은 어땠나?

“회사는 3월20일부터 4월11일까지 240여 명을 정리해고했다. 천재교과서는 이러닝사업부, 교과서사업부, 해법사업부 등 세 부서가 있는데, 정리해고는 이러닝사업부에 몰렸다. 이러닝사업부 경영총괄 대표가 유튜브 라이브 소통 채널에서 ‘회사가 힘들다’고 설명한 그날(3월20일) 오후부터 바로 ‘권고이직’이라고 부르는 면담이 시작됐다. 조직장이 직원들을 한 명씩 불렀고,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이직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본인이 대상자가 됐다는 사실이 수치스럽고 두렵다는 분위기가 강해 누가 대상자가 됐는지도 서로 알지 못했다. 조직장 면담을 네 번에 걸쳐서 했고 ‘나중엔 지금 제시한 보상금도 못 받고 나갈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가 설명한 급작스러운 대규모 구조조정 이유가 무엇인가?

“회사는 온라인 학습 플랫폼 ‘밀크T’를 만든 2015년부터,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서는 매년 적자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밀크T 사업 중 대다수 부문은 흑자인데 대대적으로 돈을 쏟아부은 ‘밀크T아이’에서 대규모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 ‘경영 실패를 왜 직원들이 떠안아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조직장 면담할 때는 회사 사정이 어려운 이유가 AI(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 때문이라고 말했다. AI 디지털 교과서 정책이 전면 도입 됐으면 사정이 좋아졌을 텐데, 자율선택으로 바뀌며 손실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AI 디지털 교과서 사업부서에서 책임져야 하는데 엉뚱한 사업부 인원을 정리했다.

‘AI 디지털 교과서 자율 선택’ 교육부 방침에 반발해 소송을 준비하면서, 인력 감축을 경영악화의 근거로 삼으려는 의도라는 추정도 있다. 회사는 올해 1월 관련 기자회견을 했고, 2월부터 천재교과서 입사를 앞두고 있었으나 취소 통보를 받은 사람들이 있었다. 3월 초부터 다른 부서에서 인원이 정리된 정황도 있다. 엔데믹, 학령인구 감소 때문에 경영상 필요하다는 설명도, 서비스는 줄이지 않으면서 사람만 갑작스럽게 줄인 부분이 이해되지 않는다. 오히려 회사가 무리하게 파주출판단지의 부지를 매입한 후 사업을 추진하지 않아 지체보상금을 납부했고, 2023년부터 물류창고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무리한 차입을 한 부분이 있다. 유아 대상 신규 서비스를 제대로 된 사업계획 없이 추진했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권고사직을 받아들이지 않는 인원은 어떻게 됐나?

“대기발령 명단에 포함돼 개별 공지됐다. 갑자기 기획자나 개발자들을 파주와 청라에 물류·인쇄 업무로 보낸다며 직무전환 수업을 듣게 하고 시험을 본다고 했다. 인쇄·물류로 직무가 전환되면 아예 회사 소속이 바뀌는 구조다. 홍보 소스 모집 직무도 있었다. 마트나 놀이터 앞에 파라솔을 설치하고 하루 8건씩 법정 보호자에게 자필 신청서를 받는 일이다. 혼자 9시간 이상 있으면서 1시간 마다 앱에 보고하라고 했다. 테이블과 브로슈어만 지원해주고 의자, 비눗방울, 풍선 등 필요한 나머지는 알아서 준비하라고 했다. 제공해준다는 물품도 지국이 있는 안산까지 가서 찾아와야하는 식이다. 한 달 후에 전체 평가를 하고 인사고과에 반영해 그 이후를 결정한다고 했다.”

-전혀 다른 업무를 시킨 뒤 필요 이상으로 감시하는 것 같다.

“그래서 직무전환 교육 시기에 회사를 나간 사람도 있다. 최종 대기발령된 사람의 인원이 13명이었다. 지난달 17일부터는 대기발령이 시작돼 회사는 PC를 회수해갔고 휴대폰 사용, 자리 이동도 금지했다. 위로금을 받고 퇴사하거나 직무 전환한 인원 이외에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인원은 6명이다. 6명 중 3명은 지난 12일 본사로, 1명은 교과서사업부문인 한신타워로 강제발령났다. 나머지 두 명은 출산·육아휴직을 앞둬 선심쓰듯 재택근무를 제시했다. (천재교과서 사옥이 위치한 서울 독산동) AP타워에 남아있던 마지막 6명은 회사에 의해 ‘치워졌다’.”

-대규모 구조조정 대상자에는 누가 포함됐나?

“대상자 다수는 사회 초년생, 계약직들이었다. 장애인 직군도 포함됐다. 연차를 당겨쓰거나, 출산휴가, 육아휴직, 병으로 아파서 휴직한 사람들도 많았다. 마음이 아팠던 이유가, 나 같은 사람들은 ‘회사 사정은 알지만 합의하지 않겠다’고 면담을 끝냈다. 그런데 얼마 전 정규직 전환된 어린 친구들, 힘들어서 퇴사한다고 했을 땐 붙잡더니 한 달도 안 지나 ‘이제 나가’라는 말을 듣게 된 친구들, 올해 초 정규직 전환 공식 메일을 받아 어떻게든 퇴직합의서 사인을 피해보려 했음에도 부서장이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해 사인했던 나이 어린 친구들도 많았다.”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직장 내 괴롭힘, 부당대우도 논란이 됐다.

“조직장과 면담하고 오면 ‘그래서 퇴사일이 언제죠?’라고 하루 몇 번씩 물어보는 팀장도 있었다. ‘성격이 왜 이렇게 드세? 뭐 좋은 꼴 보겠다고 회사에 남아? ○○○ 퇴사 날 캘린더에 표시해놔야지’라고 말하는 상사도 있었다. 아직 퇴사 합의를 하지 않았음에도 대상자가 된 사람을 빼고 다른 단톡방을 만들어 회의한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그런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나갔다. 회사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가장 약한 사람들부터 쫓아냈다.”

-노조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나는 3월24일 퇴근을 앞두고 면담에 불려갔다. 회사를 계속 다니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주변 지인들과 고민을 이야기한 결과 노조를 만드는 것밖에 답이 없었다. 노조를 만든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뭉치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천재교과서 업무강도가 높아 1년을 못 채우고 나가는 사람이 많다. 나도 5년 동안 일하며 많은 사람이 떠나가는 걸 보면서 내 마음이 다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회사 내 인간관계도 좁아졌다. 그러다 가장 오래 같이 일했던 지인이 구조조정 대상자가 돼 떠났다. 그 슬픔과 분노가 노조 설립의 바탕이 됐다. 내 일상이 무너졌다는 걸 느꼈다.”

-구조조정이 시작된 후 약 한 달만에 노조가 출범했다. 준비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나?

“처음엔 숨어서 개별적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다 3월 말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 만나보자’는 글을 블라인드에 올리며 공개적으로 알렸다. 언론노조 좋은책신사고지부에 연락해 고민을 이야기했고, 언론노조와도 고민을 나눴다. 처음에는 사내에서 반응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언론노조 분들을 만날 때 열 명 남짓 인원이 모였다. 빨리 노조를 만들어야 해서 언론노조에서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짐 싸서 다 나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고, 블라인드에는 ‘죽고 싶어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 사태를 빨리 멈추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쉽지 않았지만 4월22일 설립총회를 열고 승인 받았다.”

-사내에서 처음 만들어지는 노조이다. 지부장을 맡는데 부담은 없었나?

“블라인드에 ‘총대 메줄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글이 계속 올라왔다. 나도 처음부터 용감했던 건 아니고 운전을 제대로 못할 정도로 두렵기도 했다. 그래도 지인이 노조 활동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내가 잘못돼 넘어져도 뒤를 받쳐줄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육아에서 많이 벗어나 노조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 다른 직원들에 비해 나이도 있어 해봐도 될 것 같았다. ‘용기 내기 어려운 분들이 많지만, 내가 그렇지 않다면 내가 해볼까?’ 부담 없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막중한 위치라는 생각이 든다. 부당한 부분에 대해 더 관심을 기울이면서 아직 모르는 것들도 조금씩 해나가려 한다.”

-고용형태와 관계없이 누구나 노조에 가입할 수 있나?

“정규직, 비정규직 상관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천재교과서는 비정규직을 많이 뽑는다. 나도 2021년 입사했는데 처음에 무조건 1년 계약직으로 입사할 수 있다고 제안받았다. 경력이든 신입이든 1년 계약직은 당연하고, 모집 공고에도 ‘1년 후 정규직 전환 가능’이라고 돼 있다. 근데 팀마다 상황마다 시기마다 모두 제각각이다. 정규직 전환을 구두로 약속하면서도 안 지킨 사례도 많다. 11개월만 일을 시키고 잘랐다가 몇 개월 뒤 또 계약직으로 뽑는 사례도 있다. 이번 정리해고 사태처럼 정규직 전환이 됐다고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지난달 29일 노조 출범 선포 기자회견 후에는 어떤 활동을 했나?

“언론노조가 공식적인 공문을 두 차례 보냈다. 노조가 설립됐으니 노조 활동을 보장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인데 아직 회사 측 답은 없다. 남아있는 사람들도 인력이 갑자기 줄어 괴로워하고 있다. 그래서 천재교과서 노동환경 실태조사 설문을 진행하려 하고 있다. 복지 제도, 유연근무 제도, 고용형태, 근로계약서 체결, 비정규직 처우 등을 묻는 내용이다. 구조조정을 겪으며 만들어진 ‘내 자리가 안전하지 않다’는 분위기 속에서 직원들이 연봉 관련 의견을 표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된다. 임금협상도 중요한 이슈다.”

-출판계 부당대우도 심각하다고 알고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출판계 종사자들이 요구한 사항들이 있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모든 노동자의 산별교섭 △직장 내 괴롭힘 처벌 강화 △외주노동자 보호, 작업비 지급일이 명시된 표준계약서·표준단가 도입 △부당노동행위 근절,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 보장 △출판 관련 예산 확충 등이다. 이중 외주노동자 보호가 가장 중요하다. 표준계약서·표준단가 도입도 안 되고 있다. 3~6개월 전 작업을 이미 마쳐도 책의 발행 날짜에 따라 6개월~1년 동안 돈을 못 받기도 한다. 계약서가 있어도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돈을 안 주거나, 돈을 받기 위해선 ‘일을 하나 더하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일러스트 작가 등은 저작권 자체를 보장받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출판계 관행을 해결하려면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까?

“출판계 자체의 사업장 규모가 작고, 노조는 더 규모가 작다. 이번 일을 겪고 나니 내가 얼마나 내 노동환경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나 절감했다. 해결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같이 나누고 고민해야 하는 게 먼저 필요하다. 노조를 만들고 다른 출판업계에서 고민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천재교과서가 큰 기업이기 때문에 이번 대규모 구조조정을 다른 곳도 흡수하게 될까 두렵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회사 법인이 천재교과서와 천재교육으로 나눠져 있는데, 천재교육은 노조가 없다. 천재교육에도 노조가 생기고, 다른 교육계에서도 연대하면 좋을 것 같다.”


윤유경 기자 2025.05.21 17:07

출처 :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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