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선포
전국언론노동조합 천재교과서지부의 설립을 알리며
“우리는 회사의 일회용 티슈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을 지켜야 하는 노동자다”
천재교과서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두 달 전만 하더라도 우리가 이 자리에 서서 노동조합의 설립을 알리게 될 줄은 몰랐다. 이유는 전적으로 비상식적인 회사 때문이다. 지난 3월, 회사는 갑자기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통보했다. AI 디지털 교과서에 대해 무리한 투자를 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회사는 이 과정에서 ‘권고이직’이라는 신박한 표현을 사용했다. 이직은 통상 본인의 선택인데 천재교과서는 이를 해고의 다른 말로 말했다. 배경은 불투명했고 의도는 불순했다. 해고인데도 해고가 아닌 이상한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우리가 그냥 직장이라고 부르던 회사가 사실은 한 명이 좌지우지하는 개인 기업에 불과하고, 회사의 어떤 과정도 오너의 한마디에 손쉽게 흔들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AI 디지털 교과서 때문에 부채가 발생했다고 말하던 회사가 사실은 흑자를 보고 있었으며 적자는 오너 일가가 무리하게 펼친 사업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회사의 모두는 이것을 알고 있었지만, 결정한 사람이 아니라 그 결정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사람만이 결국은 책임지고 사라져야 한다는, 정말 알고 싶지 않은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 책임을 떠맡게 된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계약직이기 때문에 연장 통보를 받고도 당일에 쫓겨나듯 회사를 떠나야 했다. 또 누군가는 출산휴가를 갔다 왔기 때문에 대상자가 되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러시안룰렛처럼 하루아침에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어 버린 동료들은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함께 밥을 먹던 이에게 불려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렇게 한 달 만에 200여 명에 달하는 동료들이 회사를 떠났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는지 알려주지 않았고, 그로 인해 ‘나도 언젠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라는 불안이 회사를 질식했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우리가 해고 대상자가 된 것은 AI 디지털 교과서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무리하게 파주출판단지의 부지를 매입했고, 2022년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 않는 것에 대한 지체보상금을 납부해야 했으며, 2023년부터 물류창고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무리한 차입을 했기 때문이다. 당초 천재교육(주)가 매입한 부지를 천재교과서가 떠안은 과정이 있었는데, 출자 구조상 엄연히 별도의 법인인데도 발생한 일이다. 또한,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신규 서비스를 제대로 된 사업계획 없이 추진했다가 발생한 사업 실패 때문이다. 더구나 정리해고 대상자들은 대부분 AI 디지털 교과서와 관련이 없는 업무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AI 디지털 교과서 때문에 해고되어야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는다. 회사는 회사의 경영 실패를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각자의 노동으로 우리의 삶을 유지하고 가정을 지켜온 존엄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천재교과서가 자신들의 경영 실패를 감추기 위해 한 번 쓰고 버리는 티슈가 아니기에 우리의 삶을 지키고자 한다. 이것이 우리가 노동조합을 만든 이유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노동조합은 우리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에 이르도록 만든 것은 바로 천재교과서, 회사의 비상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최소한의 상식이 천재교과서에 자리 잡고 적어도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우리 언론노조 천재교과서지부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다. 부당해고, 차별, 괴롭힘 등 현재 우리 회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로부터 우리 동료들을 보호하고 법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활동할 것이다.
우리 언론노조 천재교과서지부는 개인으로는 힘든 문제들을 노동조합이라는 집단의 힘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함께 힘을 모으고 회사와 공식적인 단체교섭을 통해서 당당하게 우리의 요구를 관철할 것이다.
우리 언론노조 천재교과서지부는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회사나 외부 세력 누구로부터도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우리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언론노조 천재교과서지부는 우리와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무시당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에 법제도 개선을 요구할 것이다. 우리는 평범한 노동자이자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우리가 가진 시민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할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천재교과서지부는 이제 시작한다.
2025년 4월 2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천재교과서지부